페르소나[persona]
본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철학용어로는 이성적인 본성(
本性)을 가진 개별적 존재자를 가리키며, 인간 ·천사 ·신 등이 페르소나로 불린다. 즉,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를 말한다.
사람[person]
권리, 의무의 주체.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사람은 생각하기때문에 문명을 이루고 자신 또는 타인을 생각하며 살수 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규율과 법칙에 묶여 사람답게 살려고 한다.
페르소나, 사람이란 말의 어원이다.
원래는 연극 배우가 쓰는 가면을 가리키던 말.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를 뜻한다.
사람, 권리와 의무의 주체를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배려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다투지 않기 위해서,
착해보이기 위해서, 목적이 있어서, 가치관에 의해서, 배운대로, 세뇌된 대로.
믿기 위해 살아갈수 있는게 사람이고,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게 사람이다.
자신의 가면으로 만든 "자신" 이라는 이미지, 또는 컨셉트.
그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겠지.
선량하고 착한 가면속의 위선자.
한번 시작 했으면, 자신을 그러한 컨셉트의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다면,
끝까지 그 선량함의 가면을 유지하라.
한번 깨어진 가면 사이로 본모습이 보이고,
이미 그가 행했던 배려나 선량함이
"그런 척" 이었던 "위선"임을 들키고서도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당연한것처럼 말하면서 해왔던 착한척, 그 속으로 는 욕지꺼리 및 상대 비하.
오늘의 금이 간 가면에 본드 칠 해서 내일 다시 착한척 하고 싶은가.
스스로를 인정 하는게 깔끔하지 않은가.
한번 금 간 가면은 또 깨지기 쉬운 법이다.
A, B, C, D, E. 다섯 사람이 있다.
A 는 조금 바보스럽지만, 남을 배려하는 사람.
B 는 그런 A와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
C 는 오랜 시간을 보낸건 아니지만 그들과 친한 사람.
D와 E는 자주 만나지만, 언제나 항상 있는건 아니었던 사람.
A는 B조차도 인정하는, 남을 위하는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
A는 "아냐, 이리 줘 내가 할게.", "난 상관 없어", "내꺼 써" 를 자처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일을 뺏어 하고, 자신의 물건을 언제나 아끼지 않는 사람.
어느날, 만취한 A는 B와 C에게 본심을 말한다.
"아냐, (넌 개새끼니까) 이리 줘 (착한) 내가 할게."
"(니들은 언제나 지랄이지, 난 니들보다 착해서 이해하니)난 상관 없어"
"(내가 이렇게 해주면 너에게 빚이 될 테니까)내꺼 써" 였다는 것을.
다음날 D, E 는 언제나의 착한 A 를 본다.
다음날 B, C 는 금이간 가면을 쓴 A를 본다.
B와 C는 입을 다물었다.
훗날, B와 C는 또다시 깨지는 A 의 가면을 본다.
훗날에도 D와 E 는 언제나의 착한 A 를 본다.
B, C, D, E 가 모두 있을때도 언제나 A는 착한 모습이다.
이런 다섯 친구가 어떻게 될까.
B, C 가 서먹해지는건 자신들의 탓인가.
D, E 가 B, C 를 이상하게 보는건 B, C 탓인가.
하나의 예를 든 것 뿐이다.
실상도 아니고 단지 말하고자 하는것을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
그래서 와 닿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말 하고자 하는것은 알수 있을 것이다.
나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친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에게는 "남"에게 사용하는 가면을 쓰진 않는다.
직장 상사용 가면을 쓰고 10년지기 친구를 만들수 있을까.
그렇게 친구를 만든다고 해도, 그 친구가 그것을 알았을때는 그 차이만큼 그 기간만큼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렇다.
가면에도 종류가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남" 에게나 쓸만한 가면을 "친구" 에게 쓸것인가.
사람은 변해간다.
함께 서로를 느끼고,
서로가 같이 변해가고,
배려 속에서 함께하는 지기야 말로 보물이 아닌가.